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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30년, 교도소 7번… 같이 밥 먹는 일상에서 회복이 시작됐다 [중독의 끝에서, 다시 삶을 잇다]

by admin94dz
June 19, 2025
in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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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30년, 교도소 7번… 같이 밥 먹는 일상에서 회복이 시작됐다 [중독의 끝에서, 다시 삶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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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중독회복자 ‘리’ 이야기

14살에 처음… 결혼해서도 이어져
딸이 아이를 잃고서야 재활 결심
단약 4년차… 외로움·갈망 힘들어

범죄자 낙인에 침묵하고 숨게 돼
회복자·전문가와 ‘함께’ 노력해야
美마약법원처럼 치료 선택권 필요

‘리’(별칭·51)가 처음 마약에 손을 댄 건 14살 때였다. 그땐 위험하다는 인식조차 없었다. 그렇게 ‘중독’에 갇혔고, 30년간 교도소를 예닐곱 번 드나들었다. 몇 년 전, 딸이 아이를 잃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삶이 무너져 내렸다는 걸. 막 출소한 그는 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제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 용기를 내 중독재활센터 문을 두드렸다. 약을 끊은 지 4년째인 그는 매일의 삶을 다시 짓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 마약중독재활센터에서 ‘리’를 만났다. 회복은 가능하다고, 그러나 혼자서는 어렵다고 했다. 중독 회복은 개인의 싸움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치유의 과정이라고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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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으로 30여년간 힘겨운 삶을 살아온 ‘리’가 19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의 마약중독재활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리’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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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으로 30여년간 힘겨운 삶을 살아온 ‘리’가 19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의 마약중독재활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리’씨 제공

마약 중독으로 30여년간 힘겨운 삶을 살아온 ‘리’가 19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의 마약중독재활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리’씨 제공

-마약을 시작한 때는.

“14살 때 본드와 가스로 시작했다. 그땐 마약이라는 인식도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다 하게 됐고, 더 강한 자극을 찾다 17살때 필로폰까지 갔다. 군대에서 잠깐 멈췄지만, 휴가 때 다시 손댔다. 그렇게 일상이 무너졌다.”

-삶이 무너졌다고 느꼈을 때는.

“이혼하고서 딸한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다. 딸을 낳고도 밖으로 돌았고, 돈도 마약으로 벌었다. 그게 더 쉬웠다. 마흔이 넘어서야 ‘잘못 살았구나’ 싶었다. 끊고 싶었고 죽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혼자선 안 되더라.”

-가족과의 관계는.

“부모님은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내가 관계를 끊었다. 교도소와 정신병원을 들락이며 ‘이런 나는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연락을 끊고 10년 넘게 방황했다. 딸과도 오래 단절됐다. 다시 만난 게 불과 3~4년 전이다.”

-전환점이 있었나.

“딸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출소 직후였다. 그때 느꼈다.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는 걸.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마약중독재활센터는 어떻게 찾게 됐나.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박영덕 전 센터장이 선배다. 같은 동네에서 함께 약을 했던 분인데, 회복해서 다른 이들의 재활을 돕고 있다는 게 큰 희망이었다. 상담보다도 외로워서 갔다. 말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와서 밥이라도 먹자’는 말에 매일 점심을 같이 먹으며 일상을 조금씩 되찾았다.”

-단약 4년차인데 여전히 갈망이 오나.

“온다. 불쑥불쑥. 중요한 건 그 순간을 어떻게 넘기느냐다. 준비된 대처가 없으면 무너진다. 처음엔 외로움이 제일 힘들었다. 갈망을 끊으려면 중독자 친구들부터 끊어야 했다. 전화번호를 바꾸고 고향도 떠났다. 나를 낯선 곳에 던져야 했다. 많은 사람은 그걸 못 한다. 외롭고 아프니까.”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나.

“솔직히 더 힘들다. 예전엔 약으로 피했지만, 이제는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니까. 그래도 시간이 쌓이면서 조금 평온해졌다. 쉽진 않지만 살아 있는 느낌이다. 딸과 가끔 만나고 부모님과 통화한다. 가족 관계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미안하다. 그래도 나아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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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약을 끊은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흰 종이에 ‘오늘도 하루만 무사히’라는 문장을 써 내려갔다. ‘리’씨 제공

4년 전 약을 끊은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흰 종이에 ‘오늘도 하루만 무사히’라는 문장을 써 내려갔다.
‘리’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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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약을 끊은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흰 종이에 ‘오늘도 하루만 무사히’라는 문장을 써 내려갔다. ‘리’씨 제공

4년 전 약을 끊은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흰 종이에 ‘오늘도 하루만 무사히’라는 문장을 써 내려갔다.
‘리’씨 제공

-중독자에게 꼭 필요한 건.

“관심이다. 관계가 먼저다. 교육·치료·상담 다 중요하지만, 관계 없이는 시작도 못 한다. 중독자들은 외롭고 어릴 적부터 결핍이 많다. 재활센터는 늘었지만 중독자와 진심으로 대화해 본 공무원은 드물다. 내가 늘 말한다. 회복자 모임에 와 보라고. 답은 그 안에 있다.”

-제도의 문제는.

“미국엔 ‘마약 법원’이 있다. ‘감옥 갈래, 치료받을래’ 선택권을 준다. 우리는 그런 게 없다. 곧바로 감옥으로 보낸다. 마약을 파는 사람은 강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투약자는 범법자이면서도 병자다. 그런데 우리는 범죄자로만 본다.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은 전국 두 곳뿐이고 낙인이 두려워 숨게 된다. 재활센터는 늘었지만 신고당할까 봐 문턱조차 못 넘는 사람이 많다.”

-중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중요한 건 노력이다. 누구나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두려워 시작을 못 한다. 나도 그랬다. 옆에서 손잡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 회복자와 전문가가 함께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도울 순 없나.

“쉽진 않다. 중독은 범법이고 동시에 가장 깊은 치부다. 누구나 쉽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특히 회복자가 입을 여는 순간 손가락질부터 받는다. 그래서 다들 침묵한다. 그만큼 낙인이 무거운 거다.”

-결국 사회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건데.

“낙인을 멈추고 질병으로 봐야 한다. 마약은 치료받아야 할 문제다. 회복엔 시간이 걸린다. 최소 3년, 길게는 10년이다. 당장 변화가 안 보인다고 지원을 끊어선 안 된다. ‘마약 교도소’ 같은 시설도 있어야 한다. 거기에서 체계적인 치료와 교육,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언젠가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리’들이 삶을 붙들 수 있다.”

이현정 기자

2025-06-20 1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회 중독회복자 ‘리’ 이야기

14살에 처음… 결혼해서도 이어져
딸이 아이를 잃고서야 재활 결심
단약 4년차… 외로움·갈망 힘들어

범죄자 낙인에 침묵하고 숨게 돼
회복자·전문가와 ‘함께’ 노력해야
美마약법원처럼 치료 선택권 필요

‘리’(별칭·51)가 처음 마약에 손을 댄 건 14살 때였다. 그땐 위험하다는 인식조차 없었다. 그렇게 ‘중독’에 갇혔고, 30년간 교도소를 예닐곱 번 드나들었다. 몇 년 전, 딸이 아이를 잃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삶이 무너져 내렸다는 걸. 막 출소한 그는 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제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 용기를 내 중독재활센터 문을 두드렸다. 약을 끊은 지 4년째인 그는 매일의 삶을 다시 짓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 마약중독재활센터에서 ‘리’를 만났다. 회복은 가능하다고, 그러나 혼자서는 어렵다고 했다. 중독 회복은 개인의 싸움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치유의 과정이라고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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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으로 30여년간 힘겨운 삶을 살아온 ‘리’가 19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의 마약중독재활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리’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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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으로 30여년간 힘겨운 삶을 살아온 ‘리’가 19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의 마약중독재활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리’씨 제공

마약 중독으로 30여년간 힘겨운 삶을 살아온 ‘리’가 19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의 마약중독재활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리’씨 제공

-마약을 시작한 때는.

“14살 때 본드와 가스로 시작했다. 그땐 마약이라는 인식도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다 하게 됐고, 더 강한 자극을 찾다 17살때 필로폰까지 갔다. 군대에서 잠깐 멈췄지만, 휴가 때 다시 손댔다. 그렇게 일상이 무너졌다.”

-삶이 무너졌다고 느꼈을 때는.

“이혼하고서 딸한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다. 딸을 낳고도 밖으로 돌았고, 돈도 마약으로 벌었다. 그게 더 쉬웠다. 마흔이 넘어서야 ‘잘못 살았구나’ 싶었다. 끊고 싶었고 죽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혼자선 안 되더라.”

-가족과의 관계는.

“부모님은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내가 관계를 끊었다. 교도소와 정신병원을 들락이며 ‘이런 나는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연락을 끊고 10년 넘게 방황했다. 딸과도 오래 단절됐다. 다시 만난 게 불과 3~4년 전이다.”

-전환점이 있었나.

“딸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출소 직후였다. 그때 느꼈다.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는 걸.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마약중독재활센터는 어떻게 찾게 됐나.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박영덕 전 센터장이 선배다. 같은 동네에서 함께 약을 했던 분인데, 회복해서 다른 이들의 재활을 돕고 있다는 게 큰 희망이었다. 상담보다도 외로워서 갔다. 말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와서 밥이라도 먹자’는 말에 매일 점심을 같이 먹으며 일상을 조금씩 되찾았다.”

-단약 4년차인데 여전히 갈망이 오나.

“온다. 불쑥불쑥. 중요한 건 그 순간을 어떻게 넘기느냐다. 준비된 대처가 없으면 무너진다. 처음엔 외로움이 제일 힘들었다. 갈망을 끊으려면 중독자 친구들부터 끊어야 했다. 전화번호를 바꾸고 고향도 떠났다. 나를 낯선 곳에 던져야 했다. 많은 사람은 그걸 못 한다. 외롭고 아프니까.”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나.

“솔직히 더 힘들다. 예전엔 약으로 피했지만, 이제는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니까. 그래도 시간이 쌓이면서 조금 평온해졌다. 쉽진 않지만 살아 있는 느낌이다. 딸과 가끔 만나고 부모님과 통화한다. 가족 관계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미안하다. 그래도 나아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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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약을 끊은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흰 종이에 ‘오늘도 하루만 무사히’라는 문장을 써 내려갔다. ‘리’씨 제공

4년 전 약을 끊은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흰 종이에 ‘오늘도 하루만 무사히’라는 문장을 써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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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약을 끊은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흰 종이에 ‘오늘도 하루만 무사히’라는 문장을 써 내려갔다.
‘리’씨 제공

-중독자에게 꼭 필요한 건.

“관심이다. 관계가 먼저다. 교육·치료·상담 다 중요하지만, 관계 없이는 시작도 못 한다. 중독자들은 외롭고 어릴 적부터 결핍이 많다. 재활센터는 늘었지만 중독자와 진심으로 대화해 본 공무원은 드물다. 내가 늘 말한다. 회복자 모임에 와 보라고. 답은 그 안에 있다.”

-제도의 문제는.

“미국엔 ‘마약 법원’이 있다. ‘감옥 갈래, 치료받을래’ 선택권을 준다. 우리는 그런 게 없다. 곧바로 감옥으로 보낸다. 마약을 파는 사람은 강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투약자는 범법자이면서도 병자다. 그런데 우리는 범죄자로만 본다.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은 전국 두 곳뿐이고 낙인이 두려워 숨게 된다. 재활센터는 늘었지만 신고당할까 봐 문턱조차 못 넘는 사람이 많다.”

-중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중요한 건 노력이다. 누구나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두려워 시작을 못 한다. 나도 그랬다. 옆에서 손잡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 회복자와 전문가가 함께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도울 순 없나.

“쉽진 않다. 중독은 범법이고 동시에 가장 깊은 치부다. 누구나 쉽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특히 회복자가 입을 여는 순간 손가락질부터 받는다. 그래서 다들 침묵한다. 그만큼 낙인이 무거운 거다.”

-결국 사회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건데.

“낙인을 멈추고 질병으로 봐야 한다. 마약은 치료받아야 할 문제다. 회복엔 시간이 걸린다. 최소 3년, 길게는 10년이다. 당장 변화가 안 보인다고 지원을 끊어선 안 된다. ‘마약 교도소’ 같은 시설도 있어야 한다. 거기에서 체계적인 치료와 교육,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언젠가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리’들이 삶을 붙들 수 있다.”

이현정 기자

2025-06-20 1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회 중독회복자 ‘리’ 이야기

14살에 처음… 결혼해서도 이어져
딸이 아이를 잃고서야 재활 결심
단약 4년차… 외로움·갈망 힘들어

범죄자 낙인에 침묵하고 숨게 돼
회복자·전문가와 ‘함께’ 노력해야
美마약법원처럼 치료 선택권 필요

‘리’(별칭·51)가 처음 마약에 손을 댄 건 14살 때였다. 그땐 위험하다는 인식조차 없었다. 그렇게 ‘중독’에 갇혔고, 30년간 교도소를 예닐곱 번 드나들었다. 몇 년 전, 딸이 아이를 잃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삶이 무너져 내렸다는 걸. 막 출소한 그는 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제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 용기를 내 중독재활센터 문을 두드렸다. 약을 끊은 지 4년째인 그는 매일의 삶을 다시 짓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 마약중독재활센터에서 ‘리’를 만났다. 회복은 가능하다고, 그러나 혼자서는 어렵다고 했다. 중독 회복은 개인의 싸움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치유의 과정이라고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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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으로 30여년간 힘겨운 삶을 살아온 ‘리’가 19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의 마약중독재활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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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으로 30여년간 힘겨운 삶을 살아온 ‘리’가 19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의 마약중독재활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리’씨 제공

마약 중독으로 30여년간 힘겨운 삶을 살아온 ‘리’가 19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의 마약중독재활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리’씨 제공

-마약을 시작한 때는.

“14살 때 본드와 가스로 시작했다. 그땐 마약이라는 인식도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다 하게 됐고, 더 강한 자극을 찾다 17살때 필로폰까지 갔다. 군대에서 잠깐 멈췄지만, 휴가 때 다시 손댔다. 그렇게 일상이 무너졌다.”

-삶이 무너졌다고 느꼈을 때는.

“이혼하고서 딸한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다. 딸을 낳고도 밖으로 돌았고, 돈도 마약으로 벌었다. 그게 더 쉬웠다. 마흔이 넘어서야 ‘잘못 살았구나’ 싶었다. 끊고 싶었고 죽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혼자선 안 되더라.”

-가족과의 관계는.

“부모님은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내가 관계를 끊었다. 교도소와 정신병원을 들락이며 ‘이런 나는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연락을 끊고 10년 넘게 방황했다. 딸과도 오래 단절됐다. 다시 만난 게 불과 3~4년 전이다.”

-전환점이 있었나.

“딸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출소 직후였다. 그때 느꼈다.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는 걸.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마약중독재활센터는 어떻게 찾게 됐나.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박영덕 전 센터장이 선배다. 같은 동네에서 함께 약을 했던 분인데, 회복해서 다른 이들의 재활을 돕고 있다는 게 큰 희망이었다. 상담보다도 외로워서 갔다. 말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와서 밥이라도 먹자’는 말에 매일 점심을 같이 먹으며 일상을 조금씩 되찾았다.”

-단약 4년차인데 여전히 갈망이 오나.

“온다. 불쑥불쑥. 중요한 건 그 순간을 어떻게 넘기느냐다. 준비된 대처가 없으면 무너진다. 처음엔 외로움이 제일 힘들었다. 갈망을 끊으려면 중독자 친구들부터 끊어야 했다. 전화번호를 바꾸고 고향도 떠났다. 나를 낯선 곳에 던져야 했다. 많은 사람은 그걸 못 한다. 외롭고 아프니까.”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나.

“솔직히 더 힘들다. 예전엔 약으로 피했지만, 이제는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니까. 그래도 시간이 쌓이면서 조금 평온해졌다. 쉽진 않지만 살아 있는 느낌이다. 딸과 가끔 만나고 부모님과 통화한다. 가족 관계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미안하다. 그래도 나아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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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약을 끊은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흰 종이에 ‘오늘도 하루만 무사히’라는 문장을 써 내려갔다. ‘리’씨 제공

4년 전 약을 끊은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흰 종이에 ‘오늘도 하루만 무사히’라는 문장을 써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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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약을 끊은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흰 종이에 ‘오늘도 하루만 무사히’라는 문장을 써 내려갔다. ‘리’씨 제공

4년 전 약을 끊은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흰 종이에 ‘오늘도 하루만 무사히’라는 문장을 써 내려갔다.
‘리’씨 제공

-중독자에게 꼭 필요한 건.

“관심이다. 관계가 먼저다. 교육·치료·상담 다 중요하지만, 관계 없이는 시작도 못 한다. 중독자들은 외롭고 어릴 적부터 결핍이 많다. 재활센터는 늘었지만 중독자와 진심으로 대화해 본 공무원은 드물다. 내가 늘 말한다. 회복자 모임에 와 보라고. 답은 그 안에 있다.”

-제도의 문제는.

“미국엔 ‘마약 법원’이 있다. ‘감옥 갈래, 치료받을래’ 선택권을 준다. 우리는 그런 게 없다. 곧바로 감옥으로 보낸다. 마약을 파는 사람은 강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투약자는 범법자이면서도 병자다. 그런데 우리는 범죄자로만 본다.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은 전국 두 곳뿐이고 낙인이 두려워 숨게 된다. 재활센터는 늘었지만 신고당할까 봐 문턱조차 못 넘는 사람이 많다.”

-중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중요한 건 노력이다. 누구나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두려워 시작을 못 한다. 나도 그랬다. 옆에서 손잡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 회복자와 전문가가 함께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도울 순 없나.

“쉽진 않다. 중독은 범법이고 동시에 가장 깊은 치부다. 누구나 쉽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특히 회복자가 입을 여는 순간 손가락질부터 받는다. 그래서 다들 침묵한다. 그만큼 낙인이 무거운 거다.”

-결국 사회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건데.

“낙인을 멈추고 질병으로 봐야 한다. 마약은 치료받아야 할 문제다. 회복엔 시간이 걸린다. 최소 3년, 길게는 10년이다. 당장 변화가 안 보인다고 지원을 끊어선 안 된다. ‘마약 교도소’ 같은 시설도 있어야 한다. 거기에서 체계적인 치료와 교육,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언젠가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리’들이 삶을 붙들 수 있다.”

이현정 기자

2025-06-20 1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회 중독회복자 ‘리’ 이야기

14살에 처음… 결혼해서도 이어져
딸이 아이를 잃고서야 재활 결심
단약 4년차… 외로움·갈망 힘들어

범죄자 낙인에 침묵하고 숨게 돼
회복자·전문가와 ‘함께’ 노력해야
美마약법원처럼 치료 선택권 필요

‘리’(별칭·51)가 처음 마약에 손을 댄 건 14살 때였다. 그땐 위험하다는 인식조차 없었다. 그렇게 ‘중독’에 갇혔고, 30년간 교도소를 예닐곱 번 드나들었다. 몇 년 전, 딸이 아이를 잃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삶이 무너져 내렸다는 걸. 막 출소한 그는 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제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 용기를 내 중독재활센터 문을 두드렸다. 약을 끊은 지 4년째인 그는 매일의 삶을 다시 짓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 마약중독재활센터에서 ‘리’를 만났다. 회복은 가능하다고, 그러나 혼자서는 어렵다고 했다. 중독 회복은 개인의 싸움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치유의 과정이라고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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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으로 30여년간 힘겨운 삶을 살아온 ‘리’가 19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의 마약중독재활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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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으로 30여년간 힘겨운 삶을 살아온 ‘리’가 19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의 마약중독재활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리’씨 제공

마약 중독으로 30여년간 힘겨운 삶을 살아온 ‘리’가 19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의 마약중독재활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리’씨 제공

-마약을 시작한 때는.

“14살 때 본드와 가스로 시작했다. 그땐 마약이라는 인식도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다 하게 됐고, 더 강한 자극을 찾다 17살때 필로폰까지 갔다. 군대에서 잠깐 멈췄지만, 휴가 때 다시 손댔다. 그렇게 일상이 무너졌다.”

-삶이 무너졌다고 느꼈을 때는.

“이혼하고서 딸한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다. 딸을 낳고도 밖으로 돌았고, 돈도 마약으로 벌었다. 그게 더 쉬웠다. 마흔이 넘어서야 ‘잘못 살았구나’ 싶었다. 끊고 싶었고 죽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혼자선 안 되더라.”

-가족과의 관계는.

“부모님은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내가 관계를 끊었다. 교도소와 정신병원을 들락이며 ‘이런 나는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연락을 끊고 10년 넘게 방황했다. 딸과도 오래 단절됐다. 다시 만난 게 불과 3~4년 전이다.”

-전환점이 있었나.

“딸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출소 직후였다. 그때 느꼈다.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는 걸.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마약중독재활센터는 어떻게 찾게 됐나.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박영덕 전 센터장이 선배다. 같은 동네에서 함께 약을 했던 분인데, 회복해서 다른 이들의 재활을 돕고 있다는 게 큰 희망이었다. 상담보다도 외로워서 갔다. 말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와서 밥이라도 먹자’는 말에 매일 점심을 같이 먹으며 일상을 조금씩 되찾았다.”

-단약 4년차인데 여전히 갈망이 오나.

“온다. 불쑥불쑥. 중요한 건 그 순간을 어떻게 넘기느냐다. 준비된 대처가 없으면 무너진다. 처음엔 외로움이 제일 힘들었다. 갈망을 끊으려면 중독자 친구들부터 끊어야 했다. 전화번호를 바꾸고 고향도 떠났다. 나를 낯선 곳에 던져야 했다. 많은 사람은 그걸 못 한다. 외롭고 아프니까.”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나.

“솔직히 더 힘들다. 예전엔 약으로 피했지만, 이제는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니까. 그래도 시간이 쌓이면서 조금 평온해졌다. 쉽진 않지만 살아 있는 느낌이다. 딸과 가끔 만나고 부모님과 통화한다. 가족 관계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미안하다. 그래도 나아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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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약을 끊은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흰 종이에 ‘오늘도 하루만 무사히’라는 문장을 써 내려갔다. ‘리’씨 제공

4년 전 약을 끊은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흰 종이에 ‘오늘도 하루만 무사히’라는 문장을 써 내려갔다.
‘리’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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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약을 끊은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흰 종이에 ‘오늘도 하루만 무사히’라는 문장을 써 내려갔다. ‘리’씨 제공

4년 전 약을 끊은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흰 종이에 ‘오늘도 하루만 무사히’라는 문장을 써 내려갔다.
‘리’씨 제공

-중독자에게 꼭 필요한 건.

“관심이다. 관계가 먼저다. 교육·치료·상담 다 중요하지만, 관계 없이는 시작도 못 한다. 중독자들은 외롭고 어릴 적부터 결핍이 많다. 재활센터는 늘었지만 중독자와 진심으로 대화해 본 공무원은 드물다. 내가 늘 말한다. 회복자 모임에 와 보라고. 답은 그 안에 있다.”

-제도의 문제는.

“미국엔 ‘마약 법원’이 있다. ‘감옥 갈래, 치료받을래’ 선택권을 준다. 우리는 그런 게 없다. 곧바로 감옥으로 보낸다. 마약을 파는 사람은 강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투약자는 범법자이면서도 병자다. 그런데 우리는 범죄자로만 본다.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은 전국 두 곳뿐이고 낙인이 두려워 숨게 된다. 재활센터는 늘었지만 신고당할까 봐 문턱조차 못 넘는 사람이 많다.”

-중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중요한 건 노력이다. 누구나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두려워 시작을 못 한다. 나도 그랬다. 옆에서 손잡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 회복자와 전문가가 함께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도울 순 없나.

“쉽진 않다. 중독은 범법이고 동시에 가장 깊은 치부다. 누구나 쉽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특히 회복자가 입을 여는 순간 손가락질부터 받는다. 그래서 다들 침묵한다. 그만큼 낙인이 무거운 거다.”

-결국 사회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건데.

“낙인을 멈추고 질병으로 봐야 한다. 마약은 치료받아야 할 문제다. 회복엔 시간이 걸린다. 최소 3년, 길게는 10년이다. 당장 변화가 안 보인다고 지원을 끊어선 안 된다. ‘마약 교도소’ 같은 시설도 있어야 한다. 거기에서 체계적인 치료와 교육,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언젠가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리’들이 삶을 붙들 수 있다.”

이현정 기자

2025-06-2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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