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북러 잇단 정상회담 가능성… 북한판 ‘안러경중’ 펼칠 수도
김정은 특별열차로 中 베이징 도착
국정원 “북중러 정상 나란히 설 것”
외교 보폭 넓혀 美 접촉 기회 볼 듯
중국의 80주년 전승절에 참석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출발한 특별열차를 타고 2일 오후 베이징에 도착했다. 6년 만의 방중으로 다자외교 무대에 데뷔하는 김 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반(反)서방 국가 정상들과 잇달아 만나 연대를 다질 전망이다.
국가정보원은 이날 “김 위원장이 3일 열병식에서 시 주석, 푸틴 대통령과 나란히 톈안먼 성루에 서서 냉전기 삼각 연대 구도를 재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1일 오후 전용열차 편으로 평양을 출발해 2일 새벽 국경을 통과했고, 오늘 오후 늦게 베이징에 도착해서 방중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라고 보고했다고 정보위 여야 간사인 박선원 더불어민주당·이성권 국민의힘 의원이 전했다.
앞서 조선중앙통신도 이날 새벽 김 위원장이 전용열차로 전날 오후 평양을 출발해 국경을 통과했다고 보도했다. 통상 김 위원장의 행보를 하루 지나 보도하던 것에 비하면 이례적으로 빠르게 방중 소식을 전한 것이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는 열차 내 집무실 칸에 최선희 외무상과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장이 함께 탑승했다. 국정원은 이들 외에 현송월 당 부부장도 수행하고 있다며 특히 “리설주, 김여정도 동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다만 김 위원장의 딸 주애의 동행 가능성에 대해선 “확정적으로 단정하긴 어렵다”고 보고했다.
국정원은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과 동급의 의전, 경호 등 각별한 예우를 받으며 방중 기간 북중 정상회담은 물론 북러 정상 간 회동도 가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3일 열병식과 이후 리셉션 갈라 공연에 참석해 각국 정상과 소통하고 주중 북한 공관을 찾거나 경제 등 관심 분야를 연계한 현지 시찰 행보가 예상된다.
다만 정보당국은 북중러 3국 정상회의가 열릴 가능성은 아직 낮다면서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우리 측 대표로 참석하는 우원식 국회의장과 김 위원장이 만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정보당국의 판단이라고 한다.
김 위원장이 방중을 결단한 데 대해서는 “한반도 정세를 주도할 수 있는 최적의 카드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국정원은 분석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회의에서 “북중 관계 복원으로 대외 운신의 폭을 넓히고 중국의 경제적 지원을 끌어내 체제 활로를 모색하려는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앞두고 리스크 헤징(방지책) 등 러시아 편중 외교를 탈피하기 위한 의도도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미 대화를 염두에 두고 중국의 지지 확보 및 미국의 태도 변화 유인도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더했다.
또 “이번 방중은 김 위원장의 다자외교 데뷔전으로 북중러 연대 옵틱을 과시하기 위한 파격 행보”라며 “향후 과감한 대내외 조치에 나설 소지가 있다”고도 전망했다. 이어 “북한이 전향적인 새 국가 발전 노선을 제시하거나 러시아로부터 반대급부 수확에 나서며 방러 카드도 저울질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미국의 태도를 주시하며 접촉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이날 발간한 ‘김정은의 중국 전승절 80주년 참석 의도와 파장’ 보고서도 김 위원장 방중의 주된 의도로 중국·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통한 대미 협상력 제고를 꼽았다. 파병 이후 러시아 일변도로 진행된 대외관계를 극복하고 다시 균형을 잡으며 북한판 ‘안러경중’(안보는 러시아 경제는 중국)을 구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도 이어졌다.
한편 이날 북한은 김 위원장이 평양을 출발하기 전 열차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최 외무상, 조용원·김덕훈 당 비서와 대화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다만 조·김 비서가 열차에 함께 탔는지, 단순히 환송을 위해 나왔는지는 불분명하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김정은 동지의 중화인민공화국 방문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주요 지도 간부들이 동행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수행 명단을 밝히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