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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선 영예, 늙어선 구설수…DNA의 아버지 제임스 왓슨 타계

by admin94dz
November 9, 2025
in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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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선 영예, 늙어선 구설수…DNA의 아버지 제임스 왓슨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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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 발견 제임스 D. 왓슨 97세 타계
현대 분자생물학의 초석을 세기의 과학자
나이들어선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구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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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를 밝혀낸 세기의 과학자 제임스 왓슨이 지난 6일 9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모든 직위에서 쫓겨나기 전 40년 동안 몸 담았던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왓슨.

위키피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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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를 밝혀낸 세기의 과학자 제임스 왓슨이 지난 6일 9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모든 직위에서 쫓겨나기 전 40년 동안 몸 담았던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왓슨.  위키피디아 제공
DNA 구조를 밝혀낸 세기의 과학자 제임스 왓슨이 지난 6일 9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모든 직위에서 쫓겨나기 전 40년 동안 몸 담았던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왓슨.

위키피디아 제공

20세기 과학사에서 중요한 성과로 꼽히는 DNA 구조를 발견하고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으며 영광의 순간을 누렸지만, 우생학을 연상케 하는 노골적인 인종 차별 발언으로 노년에는 모든 영예를 박탈당한 세계적인 생물학자 제임스 D. 왓슨이 지난 6일(현지시간)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약관의 나이에 발표한 한 장의 논문
현대 생물학의 판도를 바꾸다
1928년 4월 6일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고인은 시카고대에서 학사 과정을 마치고 1950년 인디애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영국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연구했다. 여기서 영국의 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을 만나 공동 연구 끝에 DNA 이중나선 구조를 확인했다. 이들은 1953년 4월 25일 과학 저널 ‘네이처’에 ‘핵산의 분자 구조: DNA 구조’(Molecular Structure of Nucleic Acids: A Structure for Deoxyribose Nucleic Acid)라는 한 장짜리 논문을 발표했다. 왓슨이 24세의 나이에 발표한 이 논문은 현대 생물학의 판도를 바꿨고, 분자 생물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되는 기틀을 마련했다. 덕분에 1962년 프랜시스 크릭과 모리스 윌킨스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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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를 발견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오른쪽)이 DNA 구조 모형을 앞에 두고 이야기 하고 있다.  사이언스 제공


DNA 구조를 발견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오른쪽)이 DNA 구조 모형을 앞에 두고 이야기 하고 있다.

사이언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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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를 발견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오른쪽)이 DNA 구조 모형을 앞에 두고 이야기 하고 있다.  사이언스 제공
DNA 구조를 발견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오른쪽)이 DNA 구조 모형을 앞에 두고 이야기 하고 있다.

사이언스 제공

왓슨이 DNA 구조를 밝혀내기 전까지 과학자들은 DNA가 유전의 핵심 물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어떤 방식으로 유전정보가 저장되는지, 세대를 거쳐 전달되는지, 생명 활동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알지 못했다. 돌연변이의 작동 메커니즘이나 단백질 합성 방식, 최신 유전 공학 기술인 유전자 가위 기술, 염기서열 분석, 항체 개발 등 분자생물학의 모든 혁신적 기술은 모두 DNA 구조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세기적인 논문을 발표한 3년 뒤인 1956년부터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분자생물학 분야의 기념비적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세포의 분자생물학’을 다른 연구자들과 출간했고, 1968년 뉴욕의 분자생물학 연구소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해 세계 최고 수준의 생물학 연구소를 구축하는가 하면, ‘휴먼 게놈 프로젝트’ 총괄 책임자로 활동하는 등 분자생물학의 결정적 순간에 모두 자리했다.

로절린드 프랭클린 데이터 무단 사용
‘노벨상 도둑질’ 논란의 중심에
저서 ‘이중나선’에서 동료과학자 폄하
그러나, 왓슨은 이런 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로서 수치스러울 정도의 ‘과’도 많았던 인물이다.

1968년 지금까지도 많이 읽히는 과학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이중나선: DNA 구조 발견의 개인적 기록’을 출간했다. 크릭과 함께 DNA 구조를 처음 규명한 과정을 담은 이 책에서는 자신을 과대평가하면서 영국 여성 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을 포함한 다른 동료 연구자를 깎아내렸다. 특히 그는 프랭클린이 DNA 구조를 밝혀낼 수 있는 X선 사진을 촬영했지만, 무엇을 발견했는지 깨닫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사실 왓슨과 크릭은 프랭클린과 모리스 윌킨스의 DNA 분자 X선 분석 데이터 일부를 허락 없이 사용한 정황이 드러나 ‘노벨상을 도둑맞았다’는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윌킨스는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지만, 여성 과학자인 프랭클린은 수상 4년 전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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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은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의 데이터 일부를 허락 없이 사용한 정확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진은 DNA 구조 발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폄하되고 있는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  네이처 제공


왓슨은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의 데이터 일부를 허락 없이 사용한 정확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진은 DNA 구조 발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폄하되고 있는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

네이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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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은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의 데이터 일부를 허락 없이 사용한 정확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진은 DNA 구조 발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폄하되고 있는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  네이처 제공
왓슨은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의 데이터 일부를 허락 없이 사용한 정확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진은 DNA 구조 발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폄하되고 있는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

네이처 제공

게다가, 말년이 되면서 우생학을 연상케 하는 인종차별적 발언들을 공공연히 내뱉는 등 구설에 자주 올랐다.

그는 사람의 외모는 유전자를 조작해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하며 “사람들은 모든 여자가 예쁘게 되면 끔찍할 것이라고 하지만, 난 그게 더 좋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2000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UC버클리)의 한 강연에서 햇빛 노출로 인한 피부색과 성적 욕구가 연관됐다고 말하면서 “피부의 멜라닌 색소가 성적 충동을 향상하며, 그것이 당신에게 라틴계 연인이 있는 이유”라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그뿐만 아니라 과체중인 사람은 절대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가 하면, 2007년 영국의 언론 선데이 타임스와 인터뷰에서는 “서방의 아프리카 지원정책은 ‘흑인과 백인들의 지능이 동등하다’는 잘못된 전제를 갖고 있다.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던 사람들의 지적 능력이 동일하게 진화했으리라고 믿을 확실한 근거가 없다. 흑인 직원을 다뤄본 사람들은 그게 진실이 아니란 걸 안다”라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멍청함’은 질병이며, ‘정말 멍청한’ 하위 10% 사람들은 치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0년 이후 각종 구설에 올라
노벨상 메달 경매에 내놓기도
2007년 인터뷰 공개 이후 “그런 믿음에 과학적 근거는 없다”며 사과했지만, 모든 강연이 취소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40년 가까이 몸담았던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 소장직도 사임했다. 2019년 1월 2일 미국 PBS 다큐멘터리에서 2007년 발언했던 인종차별적 견해가 바뀌었냐는 질문에 대해 “전혀 아니다”라고 답을 한 뒤 연구소는 왓슨과 인연을 완전히 끊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왓슨이 2003년 ‘제3차 인본주의 선언문’ 서명에 참여한 22명의 노벨상 수상자 중 한 명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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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들어 왓슨은 유색인종, 여성 비하 발언 등으로 구설에 오르내렸다. 이런 발언은 그가 이룩한 과학적 성과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AP 제공


2000년 들어 왓슨은 유색인종, 여성 비하 발언 등으로 구설에 오르내렸다. 이런 발언은 그가 이룩한 과학적 성과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AP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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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들어 왓슨은 유색인종, 여성 비하 발언 등으로 구설에 오르내렸다. 이런 발언은 그가 이룩한 과학적 성과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AP 제공
2000년 들어 왓슨은 유색인종, 여성 비하 발언 등으로 구설에 오르내렸다. 이런 발언은 그가 이룩한 과학적 성과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AP 제공

2000년 이후 왓슨은 생물학자로서 권위를 이용해 여성과 유색인종에 대한 자기의 사회적 편견을 정당화하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과학계에서 퇴출당했고, 어려움에 처했다. 실제로 2014년에는 자기가 받은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기도 했다. 판매 수익금으로 가족 부양과 과학 연구 지원을 하겠다는 목적이었지만 생활고 때문이었다고 전해졌다. 이후 러시아 억만장자인 알리셰르 우스마노프가 410만 달러(현재 가치로 한화 59억 7739만 원)에 메달을 낙찰받은 뒤 왓슨에게 다시 돌려줘 화제가 됐다.

이렇게 젊어서는 학문의 한 분야를 개척했다는 영예를, 나이 들어서는 인종주의자라는 불명예로 삶이 점철된 세기의 과학자가 2025년 11월 6일 잠들었다.

유용하 과학전문기자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DNA 구조 발견 제임스 D. 왓슨 97세 타계
현대 분자생물학의 초석을 세기의 과학자
나이들어선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구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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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를 밝혀낸 세기의 과학자 제임스 왓슨이 지난 6일 9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모든 직위에서 쫓겨나기 전 40년 동안 몸 담았던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왓슨.

위키피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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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를 밝혀낸 세기의 과학자 제임스 왓슨이 지난 6일 9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모든 직위에서 쫓겨나기 전 40년 동안 몸 담았던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왓슨.  위키피디아 제공
DNA 구조를 밝혀낸 세기의 과학자 제임스 왓슨이 지난 6일 9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모든 직위에서 쫓겨나기 전 40년 동안 몸 담았던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왓슨.

위키피디아 제공

20세기 과학사에서 중요한 성과로 꼽히는 DNA 구조를 발견하고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으며 영광의 순간을 누렸지만, 우생학을 연상케 하는 노골적인 인종 차별 발언으로 노년에는 모든 영예를 박탈당한 세계적인 생물학자 제임스 D. 왓슨이 지난 6일(현지시간)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약관의 나이에 발표한 한 장의 논문
현대 생물학의 판도를 바꾸다
1928년 4월 6일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고인은 시카고대에서 학사 과정을 마치고 1950년 인디애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영국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연구했다. 여기서 영국의 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을 만나 공동 연구 끝에 DNA 이중나선 구조를 확인했다. 이들은 1953년 4월 25일 과학 저널 ‘네이처’에 ‘핵산의 분자 구조: DNA 구조’(Molecular Structure of Nucleic Acids: A Structure for Deoxyribose Nucleic Acid)라는 한 장짜리 논문을 발표했다. 왓슨이 24세의 나이에 발표한 이 논문은 현대 생물학의 판도를 바꿨고, 분자 생물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되는 기틀을 마련했다. 덕분에 1962년 프랜시스 크릭과 모리스 윌킨스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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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를 발견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오른쪽)이 DNA 구조 모형을 앞에 두고 이야기 하고 있다.  사이언스 제공


DNA 구조를 발견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오른쪽)이 DNA 구조 모형을 앞에 두고 이야기 하고 있다.

사이언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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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를 발견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오른쪽)이 DNA 구조 모형을 앞에 두고 이야기 하고 있다.  사이언스 제공
DNA 구조를 발견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오른쪽)이 DNA 구조 모형을 앞에 두고 이야기 하고 있다.

사이언스 제공

왓슨이 DNA 구조를 밝혀내기 전까지 과학자들은 DNA가 유전의 핵심 물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어떤 방식으로 유전정보가 저장되는지, 세대를 거쳐 전달되는지, 생명 활동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알지 못했다. 돌연변이의 작동 메커니즘이나 단백질 합성 방식, 최신 유전 공학 기술인 유전자 가위 기술, 염기서열 분석, 항체 개발 등 분자생물학의 모든 혁신적 기술은 모두 DNA 구조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세기적인 논문을 발표한 3년 뒤인 1956년부터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분자생물학 분야의 기념비적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세포의 분자생물학’을 다른 연구자들과 출간했고, 1968년 뉴욕의 분자생물학 연구소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해 세계 최고 수준의 생물학 연구소를 구축하는가 하면, ‘휴먼 게놈 프로젝트’ 총괄 책임자로 활동하는 등 분자생물학의 결정적 순간에 모두 자리했다.

로절린드 프랭클린 데이터 무단 사용
‘노벨상 도둑질’ 논란의 중심에
저서 ‘이중나선’에서 동료과학자 폄하
그러나, 왓슨은 이런 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로서 수치스러울 정도의 ‘과’도 많았던 인물이다.

1968년 지금까지도 많이 읽히는 과학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이중나선: DNA 구조 발견의 개인적 기록’을 출간했다. 크릭과 함께 DNA 구조를 처음 규명한 과정을 담은 이 책에서는 자신을 과대평가하면서 영국 여성 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을 포함한 다른 동료 연구자를 깎아내렸다. 특히 그는 프랭클린이 DNA 구조를 밝혀낼 수 있는 X선 사진을 촬영했지만, 무엇을 발견했는지 깨닫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사실 왓슨과 크릭은 프랭클린과 모리스 윌킨스의 DNA 분자 X선 분석 데이터 일부를 허락 없이 사용한 정황이 드러나 ‘노벨상을 도둑맞았다’는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윌킨스는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지만, 여성 과학자인 프랭클린은 수상 4년 전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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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은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의 데이터 일부를 허락 없이 사용한 정확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진은 DNA 구조 발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폄하되고 있는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  네이처 제공


왓슨은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의 데이터 일부를 허락 없이 사용한 정확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진은 DNA 구조 발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폄하되고 있는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

네이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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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은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의 데이터 일부를 허락 없이 사용한 정확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진은 DNA 구조 발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폄하되고 있는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  네이처 제공
왓슨은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의 데이터 일부를 허락 없이 사용한 정확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진은 DNA 구조 발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폄하되고 있는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

네이처 제공

게다가, 말년이 되면서 우생학을 연상케 하는 인종차별적 발언들을 공공연히 내뱉는 등 구설에 자주 올랐다.

그는 사람의 외모는 유전자를 조작해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하며 “사람들은 모든 여자가 예쁘게 되면 끔찍할 것이라고 하지만, 난 그게 더 좋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2000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UC버클리)의 한 강연에서 햇빛 노출로 인한 피부색과 성적 욕구가 연관됐다고 말하면서 “피부의 멜라닌 색소가 성적 충동을 향상하며, 그것이 당신에게 라틴계 연인이 있는 이유”라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그뿐만 아니라 과체중인 사람은 절대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가 하면, 2007년 영국의 언론 선데이 타임스와 인터뷰에서는 “서방의 아프리카 지원정책은 ‘흑인과 백인들의 지능이 동등하다’는 잘못된 전제를 갖고 있다.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던 사람들의 지적 능력이 동일하게 진화했으리라고 믿을 확실한 근거가 없다. 흑인 직원을 다뤄본 사람들은 그게 진실이 아니란 걸 안다”라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멍청함’은 질병이며, ‘정말 멍청한’ 하위 10% 사람들은 치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0년 이후 각종 구설에 올라
노벨상 메달 경매에 내놓기도
2007년 인터뷰 공개 이후 “그런 믿음에 과학적 근거는 없다”며 사과했지만, 모든 강연이 취소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40년 가까이 몸담았던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 소장직도 사임했다. 2019년 1월 2일 미국 PBS 다큐멘터리에서 2007년 발언했던 인종차별적 견해가 바뀌었냐는 질문에 대해 “전혀 아니다”라고 답을 한 뒤 연구소는 왓슨과 인연을 완전히 끊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왓슨이 2003년 ‘제3차 인본주의 선언문’ 서명에 참여한 22명의 노벨상 수상자 중 한 명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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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들어 왓슨은 유색인종, 여성 비하 발언 등으로 구설에 오르내렸다. 이런 발언은 그가 이룩한 과학적 성과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AP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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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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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들어 왓슨은 유색인종, 여성 비하 발언 등으로 구설에 오르내렸다. 이런 발언은 그가 이룩한 과학적 성과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AP 제공
2000년 들어 왓슨은 유색인종, 여성 비하 발언 등으로 구설에 오르내렸다. 이런 발언은 그가 이룩한 과학적 성과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AP 제공

2000년 이후 왓슨은 생물학자로서 권위를 이용해 여성과 유색인종에 대한 자기의 사회적 편견을 정당화하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과학계에서 퇴출당했고, 어려움에 처했다. 실제로 2014년에는 자기가 받은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기도 했다. 판매 수익금으로 가족 부양과 과학 연구 지원을 하겠다는 목적이었지만 생활고 때문이었다고 전해졌다. 이후 러시아 억만장자인 알리셰르 우스마노프가 410만 달러(현재 가치로 한화 59억 7739만 원)에 메달을 낙찰받은 뒤 왓슨에게 다시 돌려줘 화제가 됐다.

이렇게 젊어서는 학문의 한 분야를 개척했다는 영예를, 나이 들어서는 인종주의자라는 불명예로 삶이 점철된 세기의 과학자가 2025년 11월 6일 잠들었다.

유용하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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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 발견 제임스 D. 왓슨 97세 타계
현대 분자생물학의 초석을 세기의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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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를 밝혀낸 세기의 과학자 제임스 왓슨이 지난 6일 9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모든 직위에서 쫓겨나기 전 40년 동안 몸 담았던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왓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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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를 밝혀낸 세기의 과학자 제임스 왓슨이 지난 6일 9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모든 직위에서 쫓겨나기 전 40년 동안 몸 담았던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왓슨.

위키피디아 제공

20세기 과학사에서 중요한 성과로 꼽히는 DNA 구조를 발견하고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으며 영광의 순간을 누렸지만, 우생학을 연상케 하는 노골적인 인종 차별 발언으로 노년에는 모든 영예를 박탈당한 세계적인 생물학자 제임스 D. 왓슨이 지난 6일(현지시간)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약관의 나이에 발표한 한 장의 논문
현대 생물학의 판도를 바꾸다
1928년 4월 6일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고인은 시카고대에서 학사 과정을 마치고 1950년 인디애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영국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연구했다. 여기서 영국의 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을 만나 공동 연구 끝에 DNA 이중나선 구조를 확인했다. 이들은 1953년 4월 25일 과학 저널 ‘네이처’에 ‘핵산의 분자 구조: DNA 구조’(Molecular Structure of Nucleic Acids: A Structure for Deoxyribose Nucleic Acid)라는 한 장짜리 논문을 발표했다. 왓슨이 24세의 나이에 발표한 이 논문은 현대 생물학의 판도를 바꿨고, 분자 생물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되는 기틀을 마련했다. 덕분에 1962년 프랜시스 크릭과 모리스 윌킨스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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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를 발견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오른쪽)이 DNA 구조 모형을 앞에 두고 이야기 하고 있다.  사이언스 제공


DNA 구조를 발견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오른쪽)이 DNA 구조 모형을 앞에 두고 이야기 하고 있다.

사이언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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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를 발견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오른쪽)이 DNA 구조 모형을 앞에 두고 이야기 하고 있다.  사이언스 제공
DNA 구조를 발견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오른쪽)이 DNA 구조 모형을 앞에 두고 이야기 하고 있다.

사이언스 제공

왓슨이 DNA 구조를 밝혀내기 전까지 과학자들은 DNA가 유전의 핵심 물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어떤 방식으로 유전정보가 저장되는지, 세대를 거쳐 전달되는지, 생명 활동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알지 못했다. 돌연변이의 작동 메커니즘이나 단백질 합성 방식, 최신 유전 공학 기술인 유전자 가위 기술, 염기서열 분석, 항체 개발 등 분자생물학의 모든 혁신적 기술은 모두 DNA 구조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세기적인 논문을 발표한 3년 뒤인 1956년부터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분자생물학 분야의 기념비적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세포의 분자생물학’을 다른 연구자들과 출간했고, 1968년 뉴욕의 분자생물학 연구소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해 세계 최고 수준의 생물학 연구소를 구축하는가 하면, ‘휴먼 게놈 프로젝트’ 총괄 책임자로 활동하는 등 분자생물학의 결정적 순간에 모두 자리했다.

로절린드 프랭클린 데이터 무단 사용
‘노벨상 도둑질’ 논란의 중심에
저서 ‘이중나선’에서 동료과학자 폄하
그러나, 왓슨은 이런 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로서 수치스러울 정도의 ‘과’도 많았던 인물이다.

1968년 지금까지도 많이 읽히는 과학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이중나선: DNA 구조 발견의 개인적 기록’을 출간했다. 크릭과 함께 DNA 구조를 처음 규명한 과정을 담은 이 책에서는 자신을 과대평가하면서 영국 여성 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을 포함한 다른 동료 연구자를 깎아내렸다. 특히 그는 프랭클린이 DNA 구조를 밝혀낼 수 있는 X선 사진을 촬영했지만, 무엇을 발견했는지 깨닫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사실 왓슨과 크릭은 프랭클린과 모리스 윌킨스의 DNA 분자 X선 분석 데이터 일부를 허락 없이 사용한 정황이 드러나 ‘노벨상을 도둑맞았다’는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윌킨스는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지만, 여성 과학자인 프랭클린은 수상 4년 전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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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은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의 데이터 일부를 허락 없이 사용한 정확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진은 DNA 구조 발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폄하되고 있는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  네이처 제공


왓슨은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의 데이터 일부를 허락 없이 사용한 정확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진은 DNA 구조 발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폄하되고 있는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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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은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의 데이터 일부를 허락 없이 사용한 정확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진은 DNA 구조 발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폄하되고 있는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  네이처 제공
왓슨은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의 데이터 일부를 허락 없이 사용한 정확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진은 DNA 구조 발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폄하되고 있는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

네이처 제공

게다가, 말년이 되면서 우생학을 연상케 하는 인종차별적 발언들을 공공연히 내뱉는 등 구설에 자주 올랐다.

그는 사람의 외모는 유전자를 조작해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하며 “사람들은 모든 여자가 예쁘게 되면 끔찍할 것이라고 하지만, 난 그게 더 좋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2000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UC버클리)의 한 강연에서 햇빛 노출로 인한 피부색과 성적 욕구가 연관됐다고 말하면서 “피부의 멜라닌 색소가 성적 충동을 향상하며, 그것이 당신에게 라틴계 연인이 있는 이유”라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그뿐만 아니라 과체중인 사람은 절대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가 하면, 2007년 영국의 언론 선데이 타임스와 인터뷰에서는 “서방의 아프리카 지원정책은 ‘흑인과 백인들의 지능이 동등하다’는 잘못된 전제를 갖고 있다.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던 사람들의 지적 능력이 동일하게 진화했으리라고 믿을 확실한 근거가 없다. 흑인 직원을 다뤄본 사람들은 그게 진실이 아니란 걸 안다”라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멍청함’은 질병이며, ‘정말 멍청한’ 하위 10% 사람들은 치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0년 이후 각종 구설에 올라
노벨상 메달 경매에 내놓기도
2007년 인터뷰 공개 이후 “그런 믿음에 과학적 근거는 없다”며 사과했지만, 모든 강연이 취소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40년 가까이 몸담았던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 소장직도 사임했다. 2019년 1월 2일 미국 PBS 다큐멘터리에서 2007년 발언했던 인종차별적 견해가 바뀌었냐는 질문에 대해 “전혀 아니다”라고 답을 한 뒤 연구소는 왓슨과 인연을 완전히 끊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왓슨이 2003년 ‘제3차 인본주의 선언문’ 서명에 참여한 22명의 노벨상 수상자 중 한 명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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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들어 왓슨은 유색인종, 여성 비하 발언 등으로 구설에 오르내렸다. 이런 발언은 그가 이룩한 과학적 성과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AP 제공


2000년 들어 왓슨은 유색인종, 여성 비하 발언 등으로 구설에 오르내렸다. 이런 발언은 그가 이룩한 과학적 성과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AP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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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들어 왓슨은 유색인종, 여성 비하 발언 등으로 구설에 오르내렸다. 이런 발언은 그가 이룩한 과학적 성과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AP 제공
2000년 들어 왓슨은 유색인종, 여성 비하 발언 등으로 구설에 오르내렸다. 이런 발언은 그가 이룩한 과학적 성과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AP 제공

2000년 이후 왓슨은 생물학자로서 권위를 이용해 여성과 유색인종에 대한 자기의 사회적 편견을 정당화하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과학계에서 퇴출당했고, 어려움에 처했다. 실제로 2014년에는 자기가 받은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기도 했다. 판매 수익금으로 가족 부양과 과학 연구 지원을 하겠다는 목적이었지만 생활고 때문이었다고 전해졌다. 이후 러시아 억만장자인 알리셰르 우스마노프가 410만 달러(현재 가치로 한화 59억 7739만 원)에 메달을 낙찰받은 뒤 왓슨에게 다시 돌려줘 화제가 됐다.

이렇게 젊어서는 학문의 한 분야를 개척했다는 영예를, 나이 들어서는 인종주의자라는 불명예로 삶이 점철된 세기의 과학자가 2025년 11월 6일 잠들었다.

유용하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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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 발견 제임스 D. 왓슨 97세 타계
현대 분자생물학의 초석을 세기의 과학자
나이들어선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구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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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를 밝혀낸 세기의 과학자 제임스 왓슨이 지난 6일 9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모든 직위에서 쫓겨나기 전 40년 동안 몸 담았던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왓슨.

위키피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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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를 밝혀낸 세기의 과학자 제임스 왓슨이 지난 6일 9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모든 직위에서 쫓겨나기 전 40년 동안 몸 담았던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왓슨.  위키피디아 제공
DNA 구조를 밝혀낸 세기의 과학자 제임스 왓슨이 지난 6일 9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모든 직위에서 쫓겨나기 전 40년 동안 몸 담았던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왓슨.

위키피디아 제공

20세기 과학사에서 중요한 성과로 꼽히는 DNA 구조를 발견하고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으며 영광의 순간을 누렸지만, 우생학을 연상케 하는 노골적인 인종 차별 발언으로 노년에는 모든 영예를 박탈당한 세계적인 생물학자 제임스 D. 왓슨이 지난 6일(현지시간)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약관의 나이에 발표한 한 장의 논문
현대 생물학의 판도를 바꾸다
1928년 4월 6일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고인은 시카고대에서 학사 과정을 마치고 1950년 인디애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영국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연구했다. 여기서 영국의 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을 만나 공동 연구 끝에 DNA 이중나선 구조를 확인했다. 이들은 1953년 4월 25일 과학 저널 ‘네이처’에 ‘핵산의 분자 구조: DNA 구조’(Molecular Structure of Nucleic Acids: A Structure for Deoxyribose Nucleic Acid)라는 한 장짜리 논문을 발표했다. 왓슨이 24세의 나이에 발표한 이 논문은 현대 생물학의 판도를 바꿨고, 분자 생물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되는 기틀을 마련했다. 덕분에 1962년 프랜시스 크릭과 모리스 윌킨스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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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를 발견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오른쪽)이 DNA 구조 모형을 앞에 두고 이야기 하고 있다.  사이언스 제공


DNA 구조를 발견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오른쪽)이 DNA 구조 모형을 앞에 두고 이야기 하고 있다.

사이언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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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를 발견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오른쪽)이 DNA 구조 모형을 앞에 두고 이야기 하고 있다.  사이언스 제공
DNA 구조를 발견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오른쪽)이 DNA 구조 모형을 앞에 두고 이야기 하고 있다.

사이언스 제공

왓슨이 DNA 구조를 밝혀내기 전까지 과학자들은 DNA가 유전의 핵심 물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어떤 방식으로 유전정보가 저장되는지, 세대를 거쳐 전달되는지, 생명 활동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알지 못했다. 돌연변이의 작동 메커니즘이나 단백질 합성 방식, 최신 유전 공학 기술인 유전자 가위 기술, 염기서열 분석, 항체 개발 등 분자생물학의 모든 혁신적 기술은 모두 DNA 구조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세기적인 논문을 발표한 3년 뒤인 1956년부터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분자생물학 분야의 기념비적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세포의 분자생물학’을 다른 연구자들과 출간했고, 1968년 뉴욕의 분자생물학 연구소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해 세계 최고 수준의 생물학 연구소를 구축하는가 하면, ‘휴먼 게놈 프로젝트’ 총괄 책임자로 활동하는 등 분자생물학의 결정적 순간에 모두 자리했다.

로절린드 프랭클린 데이터 무단 사용
‘노벨상 도둑질’ 논란의 중심에
저서 ‘이중나선’에서 동료과학자 폄하
그러나, 왓슨은 이런 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로서 수치스러울 정도의 ‘과’도 많았던 인물이다.

1968년 지금까지도 많이 읽히는 과학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이중나선: DNA 구조 발견의 개인적 기록’을 출간했다. 크릭과 함께 DNA 구조를 처음 규명한 과정을 담은 이 책에서는 자신을 과대평가하면서 영국 여성 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을 포함한 다른 동료 연구자를 깎아내렸다. 특히 그는 프랭클린이 DNA 구조를 밝혀낼 수 있는 X선 사진을 촬영했지만, 무엇을 발견했는지 깨닫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사실 왓슨과 크릭은 프랭클린과 모리스 윌킨스의 DNA 분자 X선 분석 데이터 일부를 허락 없이 사용한 정황이 드러나 ‘노벨상을 도둑맞았다’는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윌킨스는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지만, 여성 과학자인 프랭클린은 수상 4년 전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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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은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의 데이터 일부를 허락 없이 사용한 정확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진은 DNA 구조 발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폄하되고 있는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  네이처 제공


왓슨은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의 데이터 일부를 허락 없이 사용한 정확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진은 DNA 구조 발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폄하되고 있는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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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은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의 데이터 일부를 허락 없이 사용한 정확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진은 DNA 구조 발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폄하되고 있는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

네이처 제공

게다가, 말년이 되면서 우생학을 연상케 하는 인종차별적 발언들을 공공연히 내뱉는 등 구설에 자주 올랐다.

그는 사람의 외모는 유전자를 조작해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하며 “사람들은 모든 여자가 예쁘게 되면 끔찍할 것이라고 하지만, 난 그게 더 좋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2000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UC버클리)의 한 강연에서 햇빛 노출로 인한 피부색과 성적 욕구가 연관됐다고 말하면서 “피부의 멜라닌 색소가 성적 충동을 향상하며, 그것이 당신에게 라틴계 연인이 있는 이유”라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그뿐만 아니라 과체중인 사람은 절대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가 하면, 2007년 영국의 언론 선데이 타임스와 인터뷰에서는 “서방의 아프리카 지원정책은 ‘흑인과 백인들의 지능이 동등하다’는 잘못된 전제를 갖고 있다.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던 사람들의 지적 능력이 동일하게 진화했으리라고 믿을 확실한 근거가 없다. 흑인 직원을 다뤄본 사람들은 그게 진실이 아니란 걸 안다”라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멍청함’은 질병이며, ‘정말 멍청한’ 하위 10% 사람들은 치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0년 이후 각종 구설에 올라
노벨상 메달 경매에 내놓기도
2007년 인터뷰 공개 이후 “그런 믿음에 과학적 근거는 없다”며 사과했지만, 모든 강연이 취소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40년 가까이 몸담았던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 소장직도 사임했다. 2019년 1월 2일 미국 PBS 다큐멘터리에서 2007년 발언했던 인종차별적 견해가 바뀌었냐는 질문에 대해 “전혀 아니다”라고 답을 한 뒤 연구소는 왓슨과 인연을 완전히 끊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왓슨이 2003년 ‘제3차 인본주의 선언문’ 서명에 참여한 22명의 노벨상 수상자 중 한 명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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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들어 왓슨은 유색인종, 여성 비하 발언 등으로 구설에 오르내렸다. 이런 발언은 그가 이룩한 과학적 성과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AP 제공


2000년 들어 왓슨은 유색인종, 여성 비하 발언 등으로 구설에 오르내렸다. 이런 발언은 그가 이룩한 과학적 성과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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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들어 왓슨은 유색인종, 여성 비하 발언 등으로 구설에 오르내렸다. 이런 발언은 그가 이룩한 과학적 성과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AP 제공
2000년 들어 왓슨은 유색인종, 여성 비하 발언 등으로 구설에 오르내렸다. 이런 발언은 그가 이룩한 과학적 성과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AP 제공

2000년 이후 왓슨은 생물학자로서 권위를 이용해 여성과 유색인종에 대한 자기의 사회적 편견을 정당화하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과학계에서 퇴출당했고, 어려움에 처했다. 실제로 2014년에는 자기가 받은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기도 했다. 판매 수익금으로 가족 부양과 과학 연구 지원을 하겠다는 목적이었지만 생활고 때문이었다고 전해졌다. 이후 러시아 억만장자인 알리셰르 우스마노프가 410만 달러(현재 가치로 한화 59억 7739만 원)에 메달을 낙찰받은 뒤 왓슨에게 다시 돌려줘 화제가 됐다.

이렇게 젊어서는 학문의 한 분야를 개척했다는 영예를, 나이 들어서는 인종주의자라는 불명예로 삶이 점철된 세기의 과학자가 2025년 11월 6일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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