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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정치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시요”…   청와대 습격한 北 무장공비

by admin94dz
April 10, 2025
in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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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시요”…   청와대 습격한 北 무장공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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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조 성락교회 목사 별세

1968년 공작원 31명 중 혼자 생포
1997년 목사 안수… 반공교육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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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로 우리나라에 침투했다가 귀순한 뒤 목회자로 활동했던 김신조(맨 왼쪽) 목사가 9일 별세했다. 사진은 침투 다음날인 22일 김 목사가 생포된 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김 목사는 귀순 후 목사 안수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안보 관련 강의 등에 나서기도 했다.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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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로 우리나라에 침투했다가 귀순한 뒤 목회자로 활동했던 김신조(맨 왼쪽) 목사가 9일 별세했다. 사진은 침투 다음날인 22일 김 목사가 생포된 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김 목사는 귀순 후 목사 안수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안보 관련 강의 등에 나서기도 했다. 서울신문 DB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로 우리나라에 침투했다가 귀순한 뒤 목회자로 활동했던 김신조(맨 왼쪽) 목사가 9일 별세했다. 사진은 침투 다음날인 22일 김 목사가 생포된 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김 목사는 귀순 후 목사 안수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안보 관련 강의 등에 나서기도 했다.
서울신문 DB

북한 무장공비로 우리나라에 침투했다가 귀순한 뒤 목회자 생활을 했던 김신조(83) 목사가 9일 별세했다. 서울 영등포구 성락교회는 김 목사가 이날 새벽 소천했다고 밝혔다.

1942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김 목사는 1968년 1월 21일 벌어진 ‘청와대 습격 사건’에 투입된 공작원 31명 중 1명이었다. 북한의 대남공작 특수부대 124부대 소속이었던 김 목사는 청와대 습격 지령을 받고 1968년 1월 17일 밤 군사분계선 철조망을 자르고 우리나라로 넘어와 21일 밤 청와대 뒷산인 세검정고개까지 침투했다. 이들은 창의문을 통과하려다가 비상근무 중이던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정체가 드러났다. 발각된 이후 무장공비들은 기관단총을 난사하고 시내버스 4대에 수류탄을 던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소탕 작전을 벌이던 최규식 서울 종로경찰서장을 비롯해 7명의 경찰과 군인, 민간인이 희생됐다. 작전에 투입됐던 무장공비 31명 중 29명은 사살됐으며 1명은 북한으로 도주했다. 김 목사는 당시 유일하게 생포됐다. 그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왜 내려왔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시요”라고 말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김신조 목사

김신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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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조 목사

김 목사는 이후 서울까지 침투한 경로를 밝히면서 나무꾼을 만난 것 외에는 검문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또 무장공비가 침투한 목적이 대통령 관저 폭파, 서울교도소 폭파, 서빙고 간첩수용소 폭파 후 북한 간첩 대동 월북 등으로 알려지면서 전방부대의 수색과 경계 소홀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김 목사는 북한 무장공비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2년 뒤인 1970년 풀려났다. 대한민국에 귀순한 뒤 가정을 꾸렸으며 서울침례회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1997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귀순한 이후에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감시를 지속적으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락교회에서 목사로 재직하며 신앙생활을 이어 온 그는 안보와 관련된 강연과 방송 인터뷰 등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무장 남파공작원의 대표 격으로 불리며 ‘반공교육’에도 자주 등장했다. 2010년에는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의 북한인권 및 탈북자·납북자위원회 고문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김 목사의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교원예움 서서울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김우진 기자

2025-04-10 2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김신조 성락교회 목사 별세

1968년 공작원 31명 중 혼자 생포
1997년 목사 안수… 반공교육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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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로 우리나라에 침투했다가 귀순한 뒤 목회자로 활동했던 김신조(맨 왼쪽) 목사가 9일 별세했다. 사진은 침투 다음날인 22일 김 목사가 생포된 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김 목사는 귀순 후 목사 안수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안보 관련 강의 등에 나서기도 했다.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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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로 우리나라에 침투했다가 귀순한 뒤 목회자로 활동했던 김신조(맨 왼쪽) 목사가 9일 별세했다. 사진은 침투 다음날인 22일 김 목사가 생포된 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김 목사는 귀순 후 목사 안수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안보 관련 강의 등에 나서기도 했다. 서울신문 DB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로 우리나라에 침투했다가 귀순한 뒤 목회자로 활동했던 김신조(맨 왼쪽) 목사가 9일 별세했다. 사진은 침투 다음날인 22일 김 목사가 생포된 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김 목사는 귀순 후 목사 안수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안보 관련 강의 등에 나서기도 했다.
서울신문 DB

북한 무장공비로 우리나라에 침투했다가 귀순한 뒤 목회자 생활을 했던 김신조(83) 목사가 9일 별세했다. 서울 영등포구 성락교회는 김 목사가 이날 새벽 소천했다고 밝혔다.

1942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김 목사는 1968년 1월 21일 벌어진 ‘청와대 습격 사건’에 투입된 공작원 31명 중 1명이었다. 북한의 대남공작 특수부대 124부대 소속이었던 김 목사는 청와대 습격 지령을 받고 1968년 1월 17일 밤 군사분계선 철조망을 자르고 우리나라로 넘어와 21일 밤 청와대 뒷산인 세검정고개까지 침투했다. 이들은 창의문을 통과하려다가 비상근무 중이던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정체가 드러났다. 발각된 이후 무장공비들은 기관단총을 난사하고 시내버스 4대에 수류탄을 던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소탕 작전을 벌이던 최규식 서울 종로경찰서장을 비롯해 7명의 경찰과 군인, 민간인이 희생됐다. 작전에 투입됐던 무장공비 31명 중 29명은 사살됐으며 1명은 북한으로 도주했다. 김 목사는 당시 유일하게 생포됐다. 그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왜 내려왔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시요”라고 말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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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는 이후 서울까지 침투한 경로를 밝히면서 나무꾼을 만난 것 외에는 검문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또 무장공비가 침투한 목적이 대통령 관저 폭파, 서울교도소 폭파, 서빙고 간첩수용소 폭파 후 북한 간첩 대동 월북 등으로 알려지면서 전방부대의 수색과 경계 소홀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김 목사는 북한 무장공비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2년 뒤인 1970년 풀려났다. 대한민국에 귀순한 뒤 가정을 꾸렸으며 서울침례회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1997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귀순한 이후에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감시를 지속적으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락교회에서 목사로 재직하며 신앙생활을 이어 온 그는 안보와 관련된 강연과 방송 인터뷰 등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무장 남파공작원의 대표 격으로 불리며 ‘반공교육’에도 자주 등장했다. 2010년에는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의 북한인권 및 탈북자·납북자위원회 고문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김 목사의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교원예움 서서울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김우진 기자

2025-04-10 2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김신조 성락교회 목사 별세

1968년 공작원 31명 중 혼자 생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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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로 우리나라에 침투했다가 귀순한 뒤 목회자로 활동했던 김신조(맨 왼쪽) 목사가 9일 별세했다. 사진은 침투 다음날인 22일 김 목사가 생포된 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김 목사는 귀순 후 목사 안수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안보 관련 강의 등에 나서기도 했다.
서울신문 DB

북한 무장공비로 우리나라에 침투했다가 귀순한 뒤 목회자 생활을 했던 김신조(83) 목사가 9일 별세했다. 서울 영등포구 성락교회는 김 목사가 이날 새벽 소천했다고 밝혔다.

1942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김 목사는 1968년 1월 21일 벌어진 ‘청와대 습격 사건’에 투입된 공작원 31명 중 1명이었다. 북한의 대남공작 특수부대 124부대 소속이었던 김 목사는 청와대 습격 지령을 받고 1968년 1월 17일 밤 군사분계선 철조망을 자르고 우리나라로 넘어와 21일 밤 청와대 뒷산인 세검정고개까지 침투했다. 이들은 창의문을 통과하려다가 비상근무 중이던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정체가 드러났다. 발각된 이후 무장공비들은 기관단총을 난사하고 시내버스 4대에 수류탄을 던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소탕 작전을 벌이던 최규식 서울 종로경찰서장을 비롯해 7명의 경찰과 군인, 민간인이 희생됐다. 작전에 투입됐던 무장공비 31명 중 29명은 사살됐으며 1명은 북한으로 도주했다. 김 목사는 당시 유일하게 생포됐다. 그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왜 내려왔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시요”라고 말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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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는 이후 서울까지 침투한 경로를 밝히면서 나무꾼을 만난 것 외에는 검문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또 무장공비가 침투한 목적이 대통령 관저 폭파, 서울교도소 폭파, 서빙고 간첩수용소 폭파 후 북한 간첩 대동 월북 등으로 알려지면서 전방부대의 수색과 경계 소홀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김 목사는 북한 무장공비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2년 뒤인 1970년 풀려났다. 대한민국에 귀순한 뒤 가정을 꾸렸으며 서울침례회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1997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귀순한 이후에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감시를 지속적으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락교회에서 목사로 재직하며 신앙생활을 이어 온 그는 안보와 관련된 강연과 방송 인터뷰 등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무장 남파공작원의 대표 격으로 불리며 ‘반공교육’에도 자주 등장했다. 2010년에는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의 북한인권 및 탈북자·납북자위원회 고문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김 목사의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교원예움 서서울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김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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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로 우리나라에 침투했다가 귀순한 뒤 목회자로 활동했던 김신조(맨 왼쪽) 목사가 9일 별세했다. 사진은 침투 다음날인 22일 김 목사가 생포된 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김 목사는 귀순 후 목사 안수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안보 관련 강의 등에 나서기도 했다.
서울신문 DB

북한 무장공비로 우리나라에 침투했다가 귀순한 뒤 목회자 생활을 했던 김신조(83) 목사가 9일 별세했다. 서울 영등포구 성락교회는 김 목사가 이날 새벽 소천했다고 밝혔다.

1942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김 목사는 1968년 1월 21일 벌어진 ‘청와대 습격 사건’에 투입된 공작원 31명 중 1명이었다. 북한의 대남공작 특수부대 124부대 소속이었던 김 목사는 청와대 습격 지령을 받고 1968년 1월 17일 밤 군사분계선 철조망을 자르고 우리나라로 넘어와 21일 밤 청와대 뒷산인 세검정고개까지 침투했다. 이들은 창의문을 통과하려다가 비상근무 중이던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정체가 드러났다. 발각된 이후 무장공비들은 기관단총을 난사하고 시내버스 4대에 수류탄을 던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소탕 작전을 벌이던 최규식 서울 종로경찰서장을 비롯해 7명의 경찰과 군인, 민간인이 희생됐다. 작전에 투입됐던 무장공비 31명 중 29명은 사살됐으며 1명은 북한으로 도주했다. 김 목사는 당시 유일하게 생포됐다. 그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왜 내려왔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시요”라고 말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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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는 이후 서울까지 침투한 경로를 밝히면서 나무꾼을 만난 것 외에는 검문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또 무장공비가 침투한 목적이 대통령 관저 폭파, 서울교도소 폭파, 서빙고 간첩수용소 폭파 후 북한 간첩 대동 월북 등으로 알려지면서 전방부대의 수색과 경계 소홀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김 목사는 북한 무장공비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2년 뒤인 1970년 풀려났다. 대한민국에 귀순한 뒤 가정을 꾸렸으며 서울침례회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1997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귀순한 이후에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감시를 지속적으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락교회에서 목사로 재직하며 신앙생활을 이어 온 그는 안보와 관련된 강연과 방송 인터뷰 등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무장 남파공작원의 대표 격으로 불리며 ‘반공교육’에도 자주 등장했다. 2010년에는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의 북한인권 및 탈북자·납북자위원회 고문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김 목사의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교원예움 서서울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김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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