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희 서울대 의대 교수
의료정책, 긴 호흡 가지고 펼쳐야
절차적 정당성·숙의 과정이 중요
의료정책에 현장 목소리 반영을필수 의료, 적절한 보상 이뤄져야
평생 이력 관리 방법까지 고민을
‘연구 보장’ 의사과학자 양성 필요비대면 원격진료, 선택 아닌 필수
서울서 수술, 지방서 원격 협진을
해외 진출 ‘한국 대표 상품’ 가능의사인가, 교수인가. 오히려 변화를 추구하고 실행력이 있는 의료 행정가의 면모가 보인다. 최근 아시아원격의료학회 초대 회장을 맡은 강대희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그는 지난 1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비대면 진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정보기술(IT)을 활용한 디지털 헬스 기술로 공공·지역의료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과 오픈런 등으로 촉발돼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문제로 이어진 의정갈등이 봉합 수순을 밟고 있지만 의료개혁은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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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희 서울대 의대 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비대면 진료 활성화는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이나 거동이 어려운 노인 환자들에게 의료공공성을 제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강대희 서울대 의대 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비대면 진료 활성화는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이나 거동이 어려운 노인 환자들에게 의료공공성을 제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의정갈등 이후 의료계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지난해보다 안정됐지만 의정갈등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 정부의 의료정책 방향과 해법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직역 간 갈등 중재·조정이 관건
-새 정부 의료정책의 골자는 뭔가.
“아직까지 의료개혁특위 구성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등 뚜렷한 개혁 청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한미 관세 협상 등으로 정부가 신경 쓸 일이 많은 탓에 보건의료에 우선순위를 두기 어려운 상황이 아닌가 싶다. 의사와 간호사, 개원의 등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 듯하다.”
-난제가 많아 손 대기 어렵다는 건가.
“보건의료 정책은 워낙 다루는 분야가 많다. 역대 보건복지부 장관 중 복지부 관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이들은 중진급 정치인 출신들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직역 간 갈등 중재와 조정, 소통을 잘했기 때문이다.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의료정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긴 호흡을 가지고 정책을 펼쳐나가야 하는데, 새 정부의 뚜렷한 의지가 보이지 않아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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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의정갈등도 소통 부족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보건의료 정책 추진 시 가장 중요한 것은 절차적 정당성을 준수하고 숙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의과대학 2000명 증원을 밀어붙인 정책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이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소통, 신뢰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최근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이 발의됐는데,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응급실이 있는 병원은 응급환자를 볼 수 있는 의사와 병상이 없어도 환자를 받아야 한다고 강제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환자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다른 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곤란한 상황인데도 이를 강제하면 더 큰 의료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의료정책 입안 전 의료 현장을 파악하고 의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결국 필수의료 인력 부족 때문 아닌가.
“맞다. 필수의료 기피는 의료행위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근본 원인이다. 의료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행위별 수가제도다. 의사의 진료 행위에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뇌·심장·암 수술 등 필수 분야 수가는 제대로 매겨지지 않았다. 신경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 등의 수술비는 미국의 10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의료사고 등 리스크는 크다. 돈은 안 되는데 리스크만 크면 누가 하고 싶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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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희 서울대 의대 교수는 “지난 정부 의정갈등을 반면교사로 삼아 향후 의료개혁은 의정간 신뢰와 소통을 바탕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훈 기자
강대희 서울대 의대 교수는 “지난 정부 의정갈등을 반면교사로 삼아 향후 의료개혁은 의정간 신뢰와 소통을 바탕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훈 기자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는 게 공공의료
-소아과 뺑뺑이 문제도 심각하다.
“기본적으로 의대생들이 소아과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서울대병원 소아과 레지던트 및 전공의는 미달이다. 요즘 소아암이 급증하는데 소아암 전공 의사가 전국에 20~30명에 불과하다. 앞으로 소아암 치료를 받으려면 외국으로 나가야 할 판이다. 보건소만 공공의료가 아니다.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는 것이 공공의료다.”
-최근 국가교육위원회에서 필수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부인과·소아과에 병역 면제를 하고 대학 입시에선 공공의료 분야와 일반 의사, 의사과학자 등 3개 분야를 별도로 뽑자는 제안을 했다.
“좋은 방안으로 보일지 몰라도 이들의 평생 이력 관리를 어떻게 할지 등 출구전략까지 고민해야 한다. 일본은 과거 산재 환자가 많아 산업의학 의사를 키우는 대학을 신설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후 갈 수 있는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서는 의사들에게 병역 특례를 주었다. 군대를 가지 않는 대신 4년간 연구하도록 하고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성공적인 모델이었지만 이들은 다시 안과·내과 등으로 복귀해 환자를 진료한다. 계속 연구할 수 있는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 없이 봉합식 미봉책으로는 성공하지 못한다.”
-의사과학자 양성도 중요한 과제인데.
“앞으로 우리나라에 가장 중요한 의료인력은 바로 의사과학자다. 미국의 의사과학자양성프로그램(PSTP)은 노벨상 수상자 10여명 등을 비롯, 면역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능한 연구자를 다수 배출했다. 미 국립보건연구원에서 매년 의사를 200명씩 뽑아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국립보건연구원에서 의사를 선발해 평생 연구할 수 있게 해 주면 노벨상 수상의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정부가 국립대병원 소속을 교육부에서 복지부로 이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국립대병원에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예를 들어 경북대는 교육부 소관인데 경북대병원이 복지부 산하로 간다면 행정 이원화로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임상 교수는 복지부 소속인 반면 기초의학 교수는 교육부 소속이 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복지부가 의사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지역 거점 국립대병원이 복지부로 이관되면 연구보다는 진료에 치중하게 된다. 또 국립대병원이 지역의료원들을 관리하는 공공의료 중심 역할을 맡으면 의료 역량이 분산돼 병원 수준이 떨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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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각국의 원격의료 및 디지털 헬스 전문가들의 모임인 ‘아시아 원격의료학회’(ATS)는 10월 서울대 의대 의학도서관 우봉홀에서 창립 기념 학술대회인 ‘ATS 2025 아시아 원격의료학회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날 컨퍼런스에 참석한 초대 회장을 맡은 강대희 서울대 의대 교수(오른쪽)와 부회장을 맡은 마사오미 난가쿠 도쿄대 의대 학장.
강대희 교수 제공
아시아 각국의 원격의료 및 디지털 헬스 전문가들의 모임인 ‘아시아 원격의료학회’(ATS)는 10월 서울대 의대 의학도서관 우봉홀에서 창립 기념 학술대회인 ‘ATS 2025 아시아 원격의료학회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날 컨퍼런스에 참석한 초대 회장을 맡은 강대희 서울대 의대 교수(오른쪽)와 부회장을 맡은 마사오미 난가쿠 도쿄대 의대 학장.
강대희 교수 제공
●지역의료 붕괴, 지방 소멸 차원 접근해야
-연봉 수억원을 줘도 지방병원에선 의사를 구하지 못한다. 무너지는 지역의료 문제 해법은.
“경남 거창군의 경우 지난해 250명의 신생아 대부분이 다른 도시에서 출산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상주하지만 인구 감소로 환자수가 줄어드는 게 현실이다. 지역의료 붕괴는 지방소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보건소 역할 재정립 등 지역의료 혁신이 필요하다.”
-서울대 의대 지역의료혁신센터가 지역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각 지역과 협진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고 들었다.
“원격·재택 진료에서 지역의료 해법을 찾아야 한다. 방학 때 한 달씩 전남 화순, 경북 포항, 경남 통영, 강원 평창 등에 거주하면서 지역의료의 문제점을 발굴했다. 붕괴된 지역의료를 살리려면 디지털 헬스를 바탕으로 원격 협진과 비대면 진료를 활성화해야 한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 환자가 서울의 ‘빅5’ 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받더라도 환자 진단·케어는 지방병원과의 원격 협진을 통해 할 수 있다. 현재 센터에서 평창·남원·제주 등과 이런 협진 인프라 구축 작업에 들어갔다.”
-초고령사회 의료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하지 않나.
“의료 패러다임이 질병 치료에서 예방과 돌봄으로 바뀌고 있다. 질병 패턴도 바뀌고 있다. 만성병·고혈압·당뇨·고지혈증·암 등이 증가 추세다. 이들 질병 예방에 의료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초고령사회의 의료 대안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 환자가 병원에 오지 않아도 스마트폰 영상 통화나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의사 진단 및 처방이 이루어지는 비대면 진료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일본도 비대면 진료를 확대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일부 의사는 안전성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만 30년 하고 있다. 일부 시범사업을 해도 약 배송도 못 해 반쪽짜리란 지적이 제기된다. 비대면 원격진료는 더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코로나 팬데믹 때 이뤄진 3200만건 비대면 진료 중 중증 부작용은 10건도 되지 않아 안정성을 확보했다. 미국은 전체 의료의 30% 이상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진다. 비대면 진료는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이나 이동이 어려운 고령층 등에게 의료권을 보장해 의료공공성을 확보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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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지역의료의 미래’를 주제로 9월 부산시 벡스코 전시장에서 열린 ‘지역의료 분권포럼’에서 강대희 서울대 의대 교수가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강대희 교수 제공
‘AI시대 지역의료의 미래’를 주제로 9월 부산시 벡스코 전시장에서 열린 ‘지역의료 분권포럼’에서 강대희 서울대 의대 교수가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강대희 교수 제공
●아시아 원격의료 공동 연구 논의
-원격의료는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데.
“혈압과 혈당 등을 실시간 측정해 스마트폰 앱으로 보여 주는 반지와 심전도를 측정하고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위험성을 알려 주는 패치가 개발됐다. 이런 디지털 헬스케어는 IT 강국인 우리나라의 강점을 잘 살릴 수 있다. 신약 개발에는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원격의료는 자금을 적게 투입해도 아시아·유럽 등으로 진출하는 한국의 대표 상품이 될 수 있다. 우리의 미래 먹거리다. 이런 취지로 최근 아시아 각국의 원격의료 및 디지털 헬스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아시아원격의료학회’를 설립해 공동 연구와 의료데이터 표준화 등을 논의하고 있다.”
-의료개혁과 관련해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미래의료에 대비해야 한다. 예방·예측·맞춤·참여가 중요하다. 새로운 것을 하는 것보다 기존에 나와 있는 정책 중 꼭 해야 할 디지털 헬스·원격의료, 의사과학자 양성, 지역의료 혁신 등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강대희 서울대 의대 교수는
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환경보건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예방의학 분야, 특히 암 예방 분야 세계적인 전문가다. 한국인 최초 미국질병예방통제센터 역학조사 요원으로 2년간 근무하고 미국 암연구학회 공식전문지 ‘암예방연구’ 편집장을 지냈다. 아시아원격의료학회장, 한국미래의료혁신연구회·한국원격의료학회장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서울대 의대 지역의료혁신센터를 설립해 부산·경북·전남·전북에서 정책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최광숙 대기자
2025-11-18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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